2009년 06월 18일
소녀 혁명 우테나
우테나를 생각하면 나는 항상 첫인상이 안좋다는 이유로 기피해왔다는 죄의식에 시달려왔는데, 모처에 또 회원 자격 승급용으로 글 쓸 일이 생겨서 핑계 삼아 한 번 감상문을 적어 보려고 한다. 이것저것 뭔가 뽀대나는 부제를 생각해 봤지만 기특한게 하나도 없어서 그냥 이대로;;;

본 글은 분명히, 소녀혁명 우테나 연구문집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습니다만, 현재 그 책이 손에 없어서 (○○야 내가 잘못했어 돌려줘....) 정확한 인용은 불가합니다. 하지만 서술 대부분이 그 문집의 영향을 받았고, 또 그 문집에서 나온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전제를 저도 모르게 포함할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TV판 극장판 공히, 내용 숨김없이 거침없이 다 나옵니다.





우테나와 안시, 그 약속의 날 조차도 2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이 두사람의 혁명은 사람을 전율하게 한다. 나사빠진 실험적 개그와 연출, 등장인물 성격 설정, 노래, 무엇하나 지금 애니에 견주어 빠질 구석이 없다. ...감독은 탱자탱자놀고 캐릭터 원안 및 만화화 담당자가 혁명과는 대칭점에 놓인 만화 그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이나 말이다. (타앙)

많이들 아시다시피, 우테나ウテナ의 이름은 일본어로 꽃받침이다. (다른 뜻도 있지만 작품 내내 장미장미장미장미인 작품이니 만큼 이렇게 봐도 큰 무리 없을 것이다) 그럼 텐죠 우테나는 대체 누구의 꽃받침이었을까? 이것도 사실 간단하지만, 생각밖에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내가 너무 아전인수하는건가 싶기도 한데, 바로 안시anti의 꽃받침이다. (물론 일본에서 anti를 안치アンチ라고 읽는 거 나도 아는데;;;; 이대로는 너무 아름답지 않은 이름이니까 안시라고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우테나는 그 해석의 다양성 때문에 더욱 귀한 애니 아닌가!) anti, 반대, 대항이라는 뜻의 접두어 말이다. 우테나는 주인공이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우테나 중심으로 흘러가고 안시는 도대체 정체 불명의 존재로 스포트라이트 약간 뒤에 있다가 서서히 드러나지만- 역시 안시 없이는 우테나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봉오리 상태의 채 성장하지 못한 꽃을 단단히 지켜주는 꽃받침은 꽃이 활짝 피면 꽃잎아래로 조용히 사그라드는 것이 당연한 존재로, 꽃의 존재 목적이고 생명이고 핵심인 암술 수술과는 평생 제대로 된 안면이 있을 수 없다. 그야말로, 얼굴 볼 수도 없는 (혹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공주를 지키기 위한 왕자님이 바로 꽃받침인 것이다.
아직도 TV판 마지막회를 보고 토할만큼 울었던 그 날이 생각난다. 관뚜껑이 열리고, 조그마한 혁명이 한 발걸음을 내딛은 그 세계에 우테나는 없다. 안시라는 혁명의 꽃이 피어났기 때문에.

우테나 문집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 본 우테나 해석? 책이 손에 없다보니 이렇게 불확실합니다 orz) 중에서 정반합으로 혁명을 설명하신 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완성된 혁명은 또 하나의 체제가 되어 또 다시 혁명의 대상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혁명의 보호자이고 인도자인 우테나와 혁명의 꽃인 안시는 현실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부연하자면, 관에서 나온 안시와 우테나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한다 해도 우테나는 꽃잎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키오와 다른 오오토리 학원 학생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우테나를 무시할 수 있지만, 안시는 결코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봉오리가 꽃으로 피어날 때 까지 다치지 않도록 지켜준 꽃받침이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꽃잎 아래에서 자신을 지탱하는데 그 존재를 꽃 자신이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안시는 씩씩하게 걸어나간다. 허무한 세계의 끝에서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던 자신을, 희생물로 쇠락하고 낡아가던 자신을 위해 기꺼이 백만자루 검을 대신 맞아준 꽃받침의 자신을 향한 마을을 잊지 않고. 눈물이 귀걸이가 되어 자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소녀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눈물 흘린 소녀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다.



(얼마전에 나온 리마스터링이 아니라, 처음 나온 DVD 표지 중 하나. 아마 6번이었지 싶다?)
우테나와 안시의 투샷은 정말로 많고도 많지만, 나에게 가장 잊을 수 없이 강렬한 것으로 꼽으라면 역시 이 그림이다. 파일 출처는 우테나 DB로 유명한 http://www.ohtori.nu ( .......그런데 웹 돌아다니면서 본 내 기억이 맞으면, 원래 이 그림은 더 크다. 그야말로 34회 B파트에서 사람 경기 일으키게 만든 안시 형장 배경이 더 크게 나와있었는데... 그걸로 봐야 더 기함하는 그림인데 그걸 찾을 수가 없다. 꿈꿨나;;;;)

안시가 그렇게도 당당하게 "나는 당신의 꽃입니다 키랏-☆"(키랏은 없었다!) 하고 선언하건만, 누구도 안시를 꽃피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녀를 개화시키다니 그런 위험한 짓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눈앞의 마녀가, 왕자를 가두기 때문에 떨어져내린 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아키오로서는 더더욱 상상한 적도 없을 것이다) 또 신부의 상태이기에 모든 것이 유지되는 (신부 혹은 공주와 아내 혹은 왕비와 창녀의 도상에 관해서는 우테나 문집 쪽에 잘 설명 되어 있다) 구성에 모두가 속았다. -이건 어느 정도는 안시 자신의 의도도 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는 아키오의 꼭두각시처럼 보여도 결국 핵심은 그녀가 쥐고 있다는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고, 과연 안시가 자신을 마녀로 못박고 백만자루 검으로 찔러대는 세상속의 누군가에게 정말로 디오스의 힘을 쥐어줄 생각이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랑스런 아니, 사랑스러웠던. 아키오 오라버니라고 해도,
그 문 너머에 기적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빛나는 것이나 영원한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세계를 혁명할 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깨달으려고 하지 않은 건, 그들이 도구로만 보고 있던 "안시" 는 분명히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안시가 가지고 있거나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분명히 안시는 거기에 있는데도,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고, 누구도 안시를 꽃피우지 않았다.

-결국 우테나 문집에서도 여러번 다루어 졌듯이, 그 문을 여는 데 필요한 건 그 어떤 검도 아니고 눈물이었지만. 나는 마지막회에 우테나가 쓰러지고 아키오가 안시 앞에서 흘린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 나름으로는 진심을 담은 눈물이었을 것이다. 단지 그것마저도 언제나 안시가 희생하게 될 것을 전제로 하고, 자신이 꽃으로 피어날 (...아 이 표현 쓰려니 좀 괴롭군) 것을 조건으로 하여 흘리는 눈물인 것이다. 오로지 그 문 너머에서 안시를 찾은 것은 우테나 뿐이고, 그녀를 위해 기꺼이 꽃받침이 되기를 원한 것이 우테나 뿐이었다. -이미 관속에 들어간 전적이 있는 소녀. 비록 그 무게와 폭은 다르더라도, 세계의 끝에 내려앉은 절망을 알고 있는 소녀만이. 장미의 각인을 가진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결투장에 도착하는지는 전혀 그려지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결국 마지막회에서 그렇게 겹쳐서 연출한 것처럼, 우테나가 결투장의 문을 열 때 장미의 각인을 적시는 그 눈물은 그 때 맨 처음 안시를 보고 우테나가 흘린 그 눈물이었을 것이다. 진심어린 눈물만이 열쇠가 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극장판 아키오가 아무리 생난리난리를 쳐도 그에게는 열쇠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우테나의 눈물이 문을 열었고, 그래서 백만자루 검이 우테나를 향한다.

우테나는 안시를 잡을 수 없다. 그 손은 아주 잠시 닿았을 뿐 완성한 혁명, 혁명에 성공한 안티테제는 결국 또 하나의 테제가 되니까. 우테나는 "결국 난 왕자님이 되지 못하는구나. 미안 히메미야. 왕자님 흉내로 끝나버려서." 하고 쓰러졌지만, 우테나가 자신이 꽃피려 하지 않고, 왕자가 되는 것 자체에 집착하지 않고, 공주를 찾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히메미야 안시를 구하여(구하다. 가 필요한 것을 찾다. 와 얻다. 와 위험한 상황에서 빼내다. 의 세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다니 이 얼마나 오묘한 일인가. tear의 뜻이 두개라는 것 이상으로 전율이 일어나는 어휘이다) 그 관을 열었기 때문에 문이 열리고, 히메미야 안시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우테나. 괜찮아. 꽃은 봉오리 속에서 찾아내는 거지. 꽃은 따서 어딘가에 안전하게 숨겨둘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죽는 걸.

와카바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났지만, 제작진의 조역 다루는 솜씨가 무섭다. 우테나야말로 "이야기의 끝" 만을 봤을 때 주인공의 화려한 탄생을 위한 조역이었다. 화려한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 시리즈 내내 주인공이지만, -조역은 사라지고 끝에 남는 건 주인공이다.

안시가 왕자님에 의해 rescue(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신부의 역할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발로 안티테제의 길을 걸어나가도록, 우테나는 꽃받침으로, 그 꽃잎 아래에 숨어서, 세계로부터 사라진다.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오리 꽃을 지키던 역할이 끝난 우테나가 관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세계에서 슬픈 건, 관속으로 들어간 걸로 끝이 아니라 백만자루 검에 고통받는다는 것이지만.) 세계와 아키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안시라는 꽃은 알고 있다. 자기 속에 숨어들어갔지만 자신을 받쳐주고 있는 우테나의 존재를.

그래, 그 엔딩을 보고 오쿠이님의 스캣을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현실에서, 세계에서 이 두사람은 결코 만나지 못하겠지만 언제나 함께 있다고.



-그런데, 제작진으로 볼작시면 이런 나의 사상과는 비교도 안되는 스케일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현실에서 못 만난다고? 어~~~ 그럼 현실이 아닌 곳에서 만나게 하면 되겠네?"


그래서 극장판이다. 묵시록이다. TV판도 충분히 비현실적이지 않냐고 반문하시는 분은 극장판 안 본 것으로 간주하겠다. 님들 대체 이게 뭔가요. 학교 건물 부터가, TV판 학교는 (우테나의 외형 모델이라는 오스칼과 관계 깊은 베르사이유를 연상케 한다. 물론 프랑스 혁명의 타도 대상이었던 앙시앙 레짐은 anti가 아니라 ancient입니다)
최소한 돈이 과하게 많은 사람이 빡치면 현실에 충분히 만들어 볼 수도 있는 형태다. 하지만 하지만 극장판 학교 건물 젭라 어쩔.... 님들 그게 학교냐능..... 안시의 장미원도 쩨쩨한 온실 그런 거 엄따.

사람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극장판의 미술과 배경은 하나 하나 나같은 미학 초보가 봐도 "쩌네효" 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이부분이다.

댄스장면 이후, 서로 그림 그려주기 하기 전에 안시가 먼저 성큼성큼 앞장서서 우테나를 전망대로 이끌고 가는 장면.

이 장면의 절묘함은, 저렇게 높이 높이 높이 올라가는 장면에서 "우리 이렇게 건물 디쟌 끝내주게 잘했다능 'ㅅ'=3" 해놓고 정작 우테나가 "우와-! 대단하다!" 하고 안시와 함께 밖을 내다보는 장면에선

하늘에 비행기 구름만 날리고 밖을 보여주질 않는다는데 있다.
오로지 저런 표정의 두 사람만 관객에게 보여줄 뿐, 두 사람이 함께 바라보고 있는 대단한 것이 뭔지는 안 보여준다. 이 절묘하고 끔찍한 제작진!!!! 내가 여기서 일시 정지하고 무릎꿇고 울었다!!!!!

TV판에서 1부에서는 우테나 혼자 계단을 열심히 오르고, 교복이 결투 복장으로 바뀌는데 먼저 결투장에 도착해있는 안시가 관여한다는 걸 보여주고, 3부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오르면서 변신한다. (안시의 변신은 여기서도 생뚱맞게 묘사되지만.... 안시니까. 만화에서는 또 우테나가 안시에게 이거 뭐하는 눈속임이냐고 물어보는데; 그러니까 내가 만화판이 싫다니까 -_ㅠ) 극장판에서 이 한없이 올라가는 계단과 마지막에 타는 엘리베이터가 이것과 직결될 것이다. 계단과 복도를 걸을 때는 계속 우테나가 뒤따라가고, 엘리베이터는 함께 올라간다. 그리고, 두번째 엔딩곡 버츄얼 스타 발생학 영상에서, 애니 본편과는 전혀 전혀 저언혀 다른 분위기의 엘리베이터 씬을 연출해서 사람을 아주...... ...... 하는데. 요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두사람이 공유하는 감정이다. 버츄얼 스타 발생학의 그 탐미주의적 영상과는 다르지만, 이 극장판의 두 사람은 대체 이 장면에서 무엇을 같이 본 걸까. 같은 눈높이로. 저렇게나 아름다운 표정으로. -두 사람이 결투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어떤 시야와 어떤 감정을 공유했을까. 극장판에서마저 감독은 상상에 맡겨 버렸다. 망할 놈들!!



TV판에서는 3부 아키오가 본격적으로 우테나에게 찝쩍거리며 안시와의 사이를 휘저을 때가 되어서야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명하고, 그전에는 결투 도전자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아키오 파트 이전에 안시와 우테나 두 사람의 에피소드는 무도회와 카레 정도이다.
무도회야 극장판에서 오쿠이님의 "때로 사랑은" 장면으로 살떨리게 재생시켰고. 개그일변도 연출이긴 해도 카레 에피소드도 우테나로 하여금 안시가 받고있는 백만자루의 검 중 극히 일부를 체감시켰다는 점에서 무도회 이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깊게 하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TV판에서 우테나가 안시의 입장을 느끼게 하는 첫번째가 이 카레고, 두번째는 아키오와의 관계를 서로 숨기고 있었다는 것인데, 두번째는 사실 "우테나의 배신감이 더 극심하다" 는 문제는 있다. 안시야 이미 알고 있었고, 우테나야말로 자신이 숨기고 있던 것을 이미 상대가 알고 있을 것이며 똑같은 것을 상대가 자신에게 숨기고 있다고 동시에 깨달은 거니까. 하지만 단순화시키면, 두사람 다 "여자"의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서로에게 숨겼다는 점은 동일하다. (우테나의 순수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테나가 (나나미와 달리) 안시와 아키오의 근친 상간 관계에 충격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키오씨가(혹은 안시가) 자기 여동생과 (자기 오빠와) 그런 관계라니!! 가 아니라, 친구가 내남자를, 내가 친구의 남자를. 라는 부분이 더 큰 충격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본격 아키오 공기화) 내 남자와 저 여자의 관계보다 내 친구와 나의 관계속에서 서로의 여자로서의 부분이 충돌했기 때문에. 두사람은 차를 마시며 그런, 대화를 나누고도 10년 뒤를 약속할 수 있었다. 근친상간에 대한 환멸감이 문제가 아니라 배신감과 배신을 들켰다는 감정이 중요했기 때문에, 배신감으로 서로에게 독을 타고, 그러면서도 들켜버린 자신의 배신 때문에 더 추궁할 수는 없는 미묘함. 그리고 여자로서 충돌한 대신에 친구로서 서로에 대해 가지는 유대감(비밀을 알고 있다는)으로 "10년 뒤" 를 말하는 게 아닐까.)

카레 에피소드에서 서로의 입장을 경험했다면, 아키오로 인해 두 사람은 같은 위치에 서 버린다. 아키오로서야 안시와 우테나의 관계를 비틀고 또 우테나가 왕자놀이를 멈추고 "여자" 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배신과 비밀의 공유라는 그야말로 캣파이트 차원에서 두사람의 관계는 너무나도 깊어졌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그 깊어진 관계에 두려워진 안시가 투신하려고 한 것도, 아무 것도 몰랐던 자신을 우테나가 사과하는 것도. 아키오가 우테나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오히려 그렇게 서로 안에 깊이 들어가진 못했을 테니.
(그리고 두 사람의 표면적 기억에서는 봉인 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두 사람의 같은 위치 서기는 한번 더 있었다. 우테나가 관 속에 들어가고 세계의 끝을 본 날.)


극장판에서 두 사람이 함께 관객에겐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응시하는 그 장면이 첫번째 "같은 위치" 라면 그림 그리기가 "입장 바꾸기" 로 이어진다. (안시가 우테나를 보(겪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보다 우테나가 안시를 보(겪으)면서 느끼고 알게되는 것이 더 강력하게 표현된다는 것도 카레 에피소드와 동일하다. 그리고 "같은 위치에 서기" 는 왕자님 살해로 재확인되고, 이것이 극장판에서 두 사람에게 숨겨져 있는 기억이다. 물론 아키오의 시신이 발견되고, 우테나는 토우가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아서 이 세계에 왕자님은 없다고 확인하긴 하는데-

가장 마지막에 우테나가 말한다 "어째서 네가 나를 알아보고, 내가 너를 거절하지 못했는지. 우리는 왕자님을 죽인 공범자였던 거야." 이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극장판은 TV판 연장선에 대한 각인이고, TV판의 기억이 두사람안에 봉인 된 채 좀더 비현실 적인, 좀더 추상적인, 이데아에 가까운 형태의 혁명을 그리고 있다고 해석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TV판 이후의 환생이라거나, 패러렐 월드라거나, 같은 이야기를 재해석 했다고 하나의 시각으로만 이야기 하기에는 극장판은 대단히 복잡하니까 부분부분이 융합되고 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극장판 우테나는 토우가라는 자신의 왕자님을 죽이지 않았고 토우가의 죽음에 안시가 개입했는지도 불분명하다. 극장판 아키오의 죽음 역시 안시가 정말로 죽였는지도 의문이라고 본다. (아키오의 절망으로 인한 자살일 수도 있지 않은가? 시체를 묻었다는 혐의는 벗을 수 없지만)

오히려 TV판 마지막의 그 때, 자신을 위로하는 그 왕자를 떨쳐낸 것, 그리고 (퇴화든 뭐든 간에 어느 정도 동일인인) 아키오의 왕자놀이 관을 떨쳐내고 밖으로 나와버린 것. 이것이야말로 이 두사람의 왕자 살해 행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백만자루 검을 받은 우테나는 그 고통으로 기억을 가두었다. 안시와 다시 인연을 맺어 되살아나는 고통, 왕자살해범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관속으로. -우테나 하나 다시 찾으려고(라는 건 TV판에서 연결된다고 보는 나의 해석이지만) 보다 이데아에 가까운 왕자 살해를 획책하는 마녀가 두려울만도 하지. TV판에 비해 극장판 초기의 우테나는 안시에게 무척 적대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거부하겠는가. 100만자루 검을 대신 맞으며 안시를 꽃피운 것이 자신인데. 우테나가 "차" 로 변한 이유는, 하필이면 "자동차" 로 변한 이유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더욱 비현실적이고 말이 안되는 방법으로, 받침대가 되어 둘이 함께 나아가기 위한 변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혁명의 꽃은 안시anti이기 때문에, 봉인되고 사회에 거부당한 안티테제를 끝까지 혁명으로 이끌기 위해 말 그대로 우테나의 온 몸이 부서져나간다. 안시도 가슴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지만 젠장... 이런 소녀 몸에 백만자루나 검이 박히는 생각을 해도 미칠 것 같지만 우테나의 육체인 자동차가 부서져나가는 장면도 결코 편안한 장면은 아니다.

그렇게, TV판안시가 내딛은 세계는 그나마 현실같지만, 두 여신이 앙상한 철골위에 서로를 끌어 안은 채 달려나가는 세계는 이건 뭐 지구도 아닌 것 같다.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곳이 아니면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기도 힘들다는데. 말 그대로 이사기요쿠, 교복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어. 그러나 이번에는 이데아의 세계라는 조건 덕분에, 서로 헤어지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혁명을 꼭 끌어안고 입맞추며 나아간다.




그러니까. 둘 다 봐야 한다. TV판만 보면 두 사람은 영원히 서로 등을 맞댄 것 처럼 두번다시 볼 수 없지만 혁명은 확실한 한 걸음을 내딛었고, 극장판만 보면 두 사람이 함께 이상을 추구하고 있어도 길도 없는 황야를 정처없이 달려가면서 심지어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달린다. 버릴 게 없어요?
by 청룡하안사녀 | 2009/06/18 01:10 | 잡담 | 트랙백(1)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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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9/10/22 23:52

제목 : 캐릭터로 풀어보는 우테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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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혁명 우테나 예전에 이글루 어떤 분 블로그에도 덧글로 적었었는데 ^^;;; 우테나가, 일본 사람들이 보통 친근감을 나타내는 표시인 "성 아닌 이름으로 부르기, 요비스테" ... more

Commented at 2009/06/20 21: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청룡하안사녀 at 2009/06/21 03:26
뭐 여러가지 근거가 있는데; 제일 처음으로, 그리고 제일 확정적으로 "안시, 이번에는 아무나가 아닌 우테나를 기다렸구나!!!" 한 건 디오스의 검입니다. "따로 검이 없엉~" 상황이라고 치더라도 기존의 인게이지 상대가 아닌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검을 뽑게 한단 말이죠.

물론 디오스의 검 자체에 대한 다른 듀얼리스트의 반응이 특별히 표현된 게 없으므로 "우테나를 찾을 때 까지 디오스의 검을 꺼내지 않았다"라는 가정은 좀 비약이 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거죠....
Commented at 2009/06/22 19:54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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